"에이, 주식 별거 아니네. 그냥 차트 보고 이평선 뚫으면 사면되잖아?" "김 박사님, 그건 이론이고요. 실전은 제 말이 맞다니까요?"
인터넷 댓글이나 술자리를 보면, 전문가보다 더 확신에 차서 떠드는 비전문가들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정말로 자신이 정답을 알고 있다고 믿습니다. 반대로 진짜 고수들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라며 겸손해하죠.
능력이 없는 사람은 자신이 얼마나 능력이 없는지조차 모릅니다. 그래서 근거 없는 자신감(근자감)으로 무장하게 되는데, 심리학에서는 이를 더닝-크루거 효과(Dunning-Kruger Effect)라고 합니다. 오늘은 제가 주식 책 딱 한 권 읽고 워런 버핏 흉내를 내다가 계좌가 반 토막 났던 흑역사를 고백합니다.

1. 주식 책 한 권 읽고 워런 버핏을 비웃던 시절
1) "주식이 세상에서 제일 쉬웠어요"
재테크 열풍이 불던 시기, 저는 서점에서 '주식 투자 무작정 따라 하기' 류의 책을 딱 한 권 사서 읽었습니다. 주말 동안 그 책을 독파하고 나니, 마치 세상의 이치를 깨달은 듯한 전율이 왔습니다. '뭐야, 재무제표 보고 차트 정배열이면 사는 거잖아? 이렇게 쉬운 걸 왜 다들 어렵다고 하지?'
월요일 장이 열리자마자 저는 모아둔 적금을 깨서 소위 '급등주'에 몰빵했습니다. 운 좋게 며칠간 수익이 났습니다. 저는 제가 주식의 천재인 줄 알았습니다. '아, 나는 직장 다닐 인재가 아니야. 전업 투자가의 피가 흐르고 있어.'
2) 전문가들의 경고를 무시하다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자, 저는 주변 사람들에게 훈수를 두기 시작했습니다. "야, 너 아직도 삼성전자 사니? 넌 투자의 기본이 안 돼 있어. 지금은 바이오가 대세야." 심지어 경제 TV에 나온 전문가가 "지금은 위험 관리가 필요합니다"라고 말하자 콧방귀를 뀌었습니다. "저 사람은 책도 안 읽었나? 지금이 기회인데 쫄고 있네. 내가 저 사람보다 낫다."
저는 정말로 제가 펀드매니저보다 시장을 더 잘 본다고 착각했습니다. 아는 게 쥐뿔도 없었기 때문에, 제가 뭘 모르는지조차 몰랐던 것입니다.
3) 파란불이 켜지고 나서야 깨달은 무지
하지만 그 자신감은 딱 3개월 갔습니다. 시장이 조정기에 들어서자 제 종목들은 추풍낙엽처럼 떨어졌습니다. -10%, -30%, -50%... 저는 당황했습니다. 책에는 '오른다'는 말만 있었지, '내릴 때 어떻게 하라'는 말은 없었거든요.
그제야 저는 밤새워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절망했습니다. 환율, 금리, 국제 정세, 수급... 제가 고려하지 않은 변수가 수천 가지나 된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게 된 것입니다. "와... 내가 진짜 무식해서 용감했구나." 반 토막 난 계좌를 보며 저는 쥐구멍에 숨고 싶었습니다. 책 한 권 읽은 놈이 제일 무섭다더니, 제가 바로 그놈이었습니다.
2.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은 과학이다
1) 우매함의 봉우리 (Mount Stupid)
코넬 대학교의 데이비드 더닝과 저스틴 크루거 교수는 흥미로운 실험을 했습니다. 논리력 시험을 치게 한 뒤, 참가자들에게 "자신의 예상 등수"를 적어내게 했습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 성적 하위 25%: "나는 상위 30% 안에 들 거야" (엄청난 과대평가)
- 성적 상위 25%: "나는 중간쯤 하려나?" (오히려 과소평가)
지식이나 경험이 거의 없는 초보자일수록 자신감이 폭발적으로 치솟는데, 이 구간을 우매함의 봉우리(Mount Stupid)라고 부릅니다. 제가 주식 책 한 권 읽고 날뛰던 때가 바로 여기였습니다.
2) 아는 게 많아질수록 자신감이 떨어진다
공부를 조금 더 하게 되면 자신감은 급격히 추락합니다. "아, 내가 모르는 게 이렇게 많구나"라는 사실을 인지하기 때문입니다. 이 구간이 절망의 계곡(Valley of Despair)입니다. 진정한 전문가는 이 계곡을 지나, 자신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정확히 파악하며 천천히 자신감을 회복하는 깨달음의 비탈(Slope of Enlightenment)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3) 메타인지를 높여야 한다
더닝-크루거 효과의 핵심은 메타인지(Metacognition)의 부재입니다. 메타인지는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를 아는 능력입니다.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이 메타인지 능력도 부족해서, 자신의 무능함을 인지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용감한 것입니다.
"내가 다 안다"는 생각이 들 때가 가장 위험한 때입니다. 그때가 바로 당신이 우매함의 봉우리 정상에 서 있다는 신호일지도 모릅니다. 진짜 고수는 항상 "아직 배울 게 많다"고 말합니다.
3. 요약 및 결론
더닝-크루거 효과는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자신의 무능함을 인식하지 못해 자신을 과대평가하고, 반대로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자신의 실력을 과소평가하는 인지 편향입니다.
초보자는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조차 모르는 메타인지 부족 상태이기 때문에, 적은 지식만으로 모든 것을 통달했다고 착각하는 '근거 없는 자신감'을 갖게 됩니다.
섣부른 확신과 오만을 경계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학습을 통해 지식의 깊이를 더하고, 자신의 판단이 틀릴 수 있음을 항상 의심하는 겸손한 태도를 길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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