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직행동 이야기

천재들이 모여서 바보 같은 결정을 내리는 이유 (feat. 집단사고)

by 호기심의 항구 2026. 2. 20.

화이트보드에 그려진 쓸모없는 네모난 바퀴를 보고 똑같이 미소 지으며 엄지를 치켜세우는 로봇 같은 사람들 속에서, 혼자 머리를 감싸 쥐고 괴로워하는 직장인의 모습을 통해 집단사고의 위험성을 묘사

"이 아이디어 어때? 다들 좋지?" "네, 팀장님! 완벽합니다." "저도 찬성입니다. 역시 팀장님 감각은 못 따라가겠네요."

회의실 분위기는 화기애애합니다. 반대 의견은 하나도 없고,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만장일치로 결정이 내려집니다. 우리는 이런 회의를 '성공적'이고 '단합이 잘된' 회의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심리학자 어빙 재니스는 경고합니다. "만장일치는 가장 위험한 신호다." 서로의 눈치를 보며 비판을 삼가고 갈등을 피하려는 심리 때문에, 집단 전체가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리는 현상. 이를 집단사고(Groupthink)라고 합니다. 오늘은 제가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생각으로 침묵했다가 회사를 웃음거리로 만들었던 흑역사를 꺼내봅니다.

1. 나의 흑역사 오답노트: 우리만 몰랐던 '최악의 네이밍'

1) "이 이름, 느낌 있지 않아?"

입사 3년 차, 신규 패션 브랜드 런칭을 앞두고 네이밍 회의가 열렸습니다. 본부장님은 야심 차게 준비해 온 이름을 칠판에 적으셨습니다. "블루 오션(Blue Ocean) 어때? 우리가 시장을 선도한다는 뜻이야. 줄여서 '블오'라고 부르면 입에 딱 붙지 않나?"

솔직히 제 속마음은 '촌스럽다'였습니다. 20대 타겟 브랜드인데 90년대 감성이 웬 말인가요. 옆자리의 대리님 표정도 살짝 일그러졌습니다. 하지만 본부장님은 기대에 찬 눈빛으로 우리를 둘러보셨습니다. "자, 솔직하게들 말해봐. 어때?"

2) 침묵의 카르텔

가장 먼저 선임 과장님이 입을 열었습니다. "오, 역시 본부장님! 뜻도 좋고 부르기도 쉽네요. 저는 찬성입니다." 그러자 다른 팀원들도 줄줄이 동조하기 시작했습니다. "네, 임팩트 있네요." "로고 디자인하기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제 차례가 왔을 때, 저는 갈등했습니다. '이거 진짜 별로인데... 근데 다들 좋다고 하는데 나만 아니라고 하면 분위기 깨겠지? 내가 뭐라고 본부장님 아이디어를 까?' 결국 저도 영혼 없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네, 트렌디한 것 같습니다. 좋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만장일치로 그 이름을 확정했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눈치를 보며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으니 완벽한 결정'이라는 착각에 빠졌습니다.

3) 시장의 냉혹한 조롱

한 달 뒤, 브랜드가 런칭되자마자 인터넷 커뮤니티가 뒤집어졌습니다. 좋은 쪽이 아니라 나쁜 쪽으로요. "블오? 이름 실화냐? 무슨 횟집 이름인 줄." "기획자들 감 다 죽었네. 저걸 컨펌한 상사나 말 안 한 부하들이나 똑같다."

매출은 바닥을 쳤고, 결국 3개월 만에 브랜드 이름을 바꿔야 했습니다. 리브랜딩 비용으로만 수천만 원이 깨졌습니다. 나중에 술자리에서 대리님이 고백하더군요. "사실 나도 그때 이름 구리다고 생각했어. 김 대리 너도 그랬지?" 우리 모두는 알고 있었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팀의 단합'을 지킨다는 핑계로 '회사의 이익'을 배신했던 공범이었습니다.

2. 만장일치는 독약이다

1) 침묵은 동의가 아니다

집단사고는 응집력이 강하고 폐쇄적인 집단일수록 잘 발생합니다. 구성원들은 집단에서 배척당할까 봐 두려워(소외 공포), 자신의 반대 의견을 스스로 검열합니다(자기 검열). "나만 조용히 있으면 빨리 퇴근할 수 있어." 이런 생각이 모이면, 겉으로는 만장일치처럼 보이지만 속으로는 곪아가는 '만장일치의 환상'이 만들어집니다.

2) 피그만 침공 사건의 교훈

케네디 대통령의 '피그만 침공' 실패는 집단사고의 대표적인 예입니다. 당시 참모들은 모두 엘리트였지만, 대통령의 계획에 반대하면 '팀플레이를 해치는 배신자'로 찍힐까 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말도 안 되는 작전이 통과되었고, 참담한 실패로 끝났습니다.

똑똑한 개인들이 모여도, 비판이 허용되지 않는 구조라면 그 집단의 지능은 가장 멍청한 사람 수준으로 떨어집니다.

3) 악마의 변호인을 선임하라

집단사고를 막으려면 의도적으로 딴지를 거는 역할, 즉 '악마의 변호인(Devil's Advocate)'을 지정해야 합니다. 회의 때 한 사람은 무조건 반대 의견만 내도록 역할을 주는 것입니다. "김 대리, 오늘 자네 역할은 내 의견을 무조건 비판하는 거야." 이렇게 판을 깔아주면, 눈치 보지 않고 리스크를 지적할 수 있습니다. 건강한 충돌이 있어야 건강한 결론이 나옵니다.

3. 요약 및 결론

집단사고는 응집력이 강한 집단 내에서 구성원들이 갈등을 피하고 의견 일치를 보려는 압박감 때문에, 비판적인 사고를 억제하고 비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리는 현상입니다.

조직 내의 위계질서나 따돌림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구성원 스스로 반대 의견을 검열하고 침묵하여 '거짓된 만장일치'를 만들어내는 것이 주된 원인입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리더가 먼저 비판을 장려하는 분위기를 만들고, 회의 시 의도적으로 반대 입장을 제시하는 '악마의 변호인' 제도를 도입하여 다양한 관점을 검토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