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가 너무 재미없는데, 티켓값이 15,000원이라 그냥 끝까지 봤어." "이 프로젝트 가망 없는 거 아는데, 지난 1년간 야근한 게 억울해서라도 못 엎겠어."
우리는 무언가를 포기해야 할 때, 앞으로 얻을 이익보다 과거에 투자한 비용을 먼저 계산합니다. 이미 지불해서 절대 되돌릴 수 없는 비용, 즉 매몰 비용(Sunk Cost)에 집착하느라 합리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현상을 매몰 비용 오류(Sunk Cost Fallacy)라고 합니다.
가장 유명한 사례의 이름을 따서 '콩코드 효과(Concorde Effect)'라고도 불리는 이 심리적 함정은, 왜 우리가 맛없는 음식을 꾸역꾸역 먹고, 헤어져야 할 연인과 질질 끌며 만나는지 설명해 줍니다.
1.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의 비극
1970년대, 영국과 프랑스는 야심 차게 초음속 여객기 '콩코드'를 개발했습니다. 하지만 개발 과정에서 이미 경제성이 없다는 것이 판명되었습니다. 연료는 너무 많이 먹고, 소음은 심했고, 승객 수는 적었습니다.
합리적인 결정은 즉시 개발을 중단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두 나라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쏟아부은 천문학적인 개발비가 얼마인데!" 결국 콩코드는 운행할수록 적자가 나는 애물단지가 되었고, 수십 년간 막대한 손실만 남긴 채 2003년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지금까지 쓴 돈'을 아까워하다가 '앞으로 쓸 돈'까지 다 날린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2. 본전 생각의 심리학: 손실 회피
왜 우리는 콩코드의 실수를 반복할까요? 우리 뇌는 이익의 기쁨보다 손실의 고통을 2배 더 크게 느끼는 손실 회피(Loss Aversion) 성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업을 중단하거나 주식을 손절매하는 순간, 그동안의 투자는 '비용'이 아닌 확정된 '손실'로 바뀝니다. 뇌는 이 손실을 인정하는 고통을 피하기 위해, "조금만 더 버티면 회복될 거야"라는 헛된 희망을 품고 투자를 지속합니다. 이것은 투자가 아니라,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기 싫은 자존심의 발로일 뿐입니다.
3. '제로 베이스'에서 다시 생각하라
매몰 비용 오류에서 탈출하는 유일한 방법은 판단의 기준을 '과거'에서 '미래'로 옮기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얼마를 썼는가?"는 잊어야 합니다. 대신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야 합니다. "만약 내가 지금 이 돈(시간)을 처음 투자하는 상황이라면, 이 프로젝트를 시작할 것인가?"
대답이 "아니요"라면 당장 멈춰야 합니다. 이미 들어간 돈은 수업료로 생각하고 잊으십시오. 진짜 아까운 것은 과거의 돈이 아니라, 미련 때문에 낭비되고 있는 당신의 '오늘'과 '미래의 기회'입니다.
요약 및 결론
매몰 비용 오류는 이미 투자한 비용(돈, 시간, 노력)이 아까워서 합리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고 손실이 나는 행동을 지속하는 현상입니다. 손실을 확정 짓는 고통을 피하려는 심리 때문에 발생하며, 대표적으로 '콩코드 효과'라고도 불립니다. 과거의 투자가 아닌 미래의 가치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며, "지금 처음 시작한다면?"이라는 질문을 통해 객관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 Curiosity's Insight: 베란다에 쌓인 500만 원어치의 재고를 보며
# 나도 CEO가 될 수 있을 줄 알았다
직장 생활 3년 차, 월급만으로는 부자가 될 수 없다는 조급함에 시달리던 때였습니다. 당시 유행하던 '직장인 투잡 쇼핑몰' 붐에 저도 휩쓸렸습니다. 평소 패션에 관심이 많았기에(착각이었습니다), 남성 의류 쇼핑몰을 덜컥 시작했습니다.
퇴직금을 미리 당겨서 동대문에서 옷을 사입했습니다. 홈페이지를 만들고, 로고를 박은 택배 박스도 1,000개나 주문했습니다. 초기 투자금만 500만 원. 제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돈이었습니다.
"이제 대박 날 일만 남았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습니다. 하루 방문자 수는 10명도 안 됐고, 주문은 일주일에 한 건 들어올까 말까였습니다. 퇴근하고 밤새워 사진을 찍고 포토샵을 해서 올렸지만, 반응은 싸늘했습니다.
# "조금만 더 하면 될 것 같은데..."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3개월 차에 접었어야 했습니다. 광고비를 써도 적자였고, 옷은 유행이 지나 악성 재고가 되어가고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멈추지 못했습니다. 아니,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내 500만 원은? 밤새워 코딩한 내 홈페이지는? 주말마다 동대문 돌아다닌 내 시간은?" 그게 너무 아까워서 미칠 것 같았습니다. 여기서 그만두면 저는 그냥 '돈 날린 패배자'가 되는 거니까요. 그래서 저는 악수를 둡니다.
"홍보가 부족해서 그래." 저는 마이너스 통장까지 뚫어서 광고비를 더 태웠습니다. 신상품이 없으면 안 된다며 안 팔리는 옷을 또 사입했습니다. 친구들에게 "나 요즘 사업해"라고 떠벌려 놓은 자존심 때문에라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6개월을 더 끌었습니다.
# 쓰레기봉투에 꿈을 담아 버리던 날
결국 1년 뒤, 제 방 베란다는 팔리지 않은 옷 박스로 가득 찼고, 통장 잔고는 바닥을 쳤으며, 저는 과로로 병원 신세까지 졌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이러다 죽어요. 일 좀 줄이세요"라고 했을 때 정신이 번쩍 들더군요.
폐업 신고를 하던 날, 저는 베란다에 쌓인 옷들을 종량제 쓰레기봉투에 담아 버렸습니다. 100리터짜리 봉투 10개. 돈으로 따지면 수백만 원어치의 옷들. 그걸 헌 옷 수거함에 넣으면서 펑펑 울었습니다. 옷이 아까워서가 아니라, 그 옷을 붙들고 낭비해 버린 제 1년이라는 시간이 너무 아까워서요.
만약 제가 3개월 차에 "아, 난 장사엔 소질이 없구나" 하고 쿨하게 500만 원을 손절했다면 어땠을까요? 적어도 마이너스 통장 빚은 없었을 거고, 건강도 지켰을 겁니다. 저는 500만 원을 지키려다 1,500만 원을 날린 셈이었습니다.
# 손절은 패배가 아니라 지능이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 것'을 미덕이라고 배웁니다. 끈기, 열정, 불굴의 의지. 멋진 말들이죠. 하지만 방향이 틀렸을 때 포기하지 않는 것은 끈기가 아니라 '오기'이고 '집착'입니다.
주식에서 -10%일 때 손절하는 사람은 바보가 아니라 고수입니다. 재미없는 영화관에서 10분 만에 나오는 사람은 돈을 버리는 게 아니라 시간을 버는 현명한 사람입니다.
여러분도 혹시 "지금까지 만난 정 때문에" 아닌 연인을 붙잡고 있나요? "준비한 기간이 아까워서" 적성에 안 맞는 시험공부를 계속하고 있나요? 과거의 당신에게 미안해하지 마세요. 대신 미래의 당신에게 미안해하세요. 썩은 동아줄을 놓아야 새 동아줄을 잡을 수 있습니다. 오늘 당신이 해야 할 가장 위대한 일은, 어쩌면 '포기'일지도 모릅니다. 망한 건 망한 겁니다. 털고 일어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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