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대리, 그건 자네가 잘 몰라서 하는 소리야. 내 경험상 이렇게 하는 게 맞아." (데이터를 보여줘도) "이건 예외적인 케이스잖아. 전체적인 흐름을 봐야지."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벽이랑 대화하는 기분이 들 때가 있습니다. 분명 객관적인 수치와 팩트를 들이밀어도, 상대방은 콧방귀도 뀌지 않고 자기주장만 되풀이합니다. 우리는 그를 '꼰대'라고 부르며 답답해하지만, 사실 그도 피해자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만 받아들이고, 반대되는 정보는 무시하거나 왜곡하는 심리, 바로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 때문입니다. 오늘은 왜 똑똑한 사람들이 멍청한 결정을 내리는지, 그리고 소통의 단절은 어디서 오는지 알아봅니다.
1. 뇌는 '팩트'보다 '편안함'을 좋아한다
인간의 뇌는 정보 처리 에너지를 아끼려는 구두쇠입니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생각(신념)을 바꾸려면 엄청난 에너지가 듭니다. 반면, 내 생각과 똑같은 정보를 받아들이는 건 아주 편안하고 즐겁습니다.
그래서 뇌는 무의식적으로 필터링 시스템을 가동합니다.
- 지지 증거: 내 생각과 맞는 정보는 "거봐, 내 말이 맞지?"라며 확대 해석하고 기억에 깊이 저장합니다.
- 반대 증거: 내 생각과 다른 정보는 "이건 자료가 잘못됐어", "운이 나빴던 거야"라며 축소하거나 폐기해 버립니다.
정치 뉴스를 볼 때 보수는 보수 채널만 보고, 진보는 진보 채널만 보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진실을 알고 싶은 게 아니라, 내가 맞다는 것을 확인받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2. 알고리즘이 만든 감옥, 필터 버블
현대 사회에서 확증 편향은 더 심각해졌습니다. 유튜브와 SNS의 알고리즘 때문입니다. 알고리즘은 우리가 좋아할 만한 영상만 계속 추천해 줍니다.
이를 필터 버블(Filter Bubble)이라고 합니다. 내 입맛에 맞는 정보에만 둘러싸여 있다 보니, 세상 모든 사람이 나처럼 생각한다고 착각하게 됩니다. "내 주변엔 다 A가 좋다고 하던데?" 아닙니다. 당신의 알고리즘이 A를 좋아하는 사람들만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이 버블 속에 갇히면 반대편 사람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외계인'이나 '악마'로 보게 되며, 소통은 완전히 단절됩니다.
3. 악마의 변호인을 곁에 두라
조직에서 리더가 확증 편향에 빠지면 회사는 망합니다. "우리 제품은 무조건 성공해"라고 믿는 리더는, "시장 반응이 차갑습니다"라는 보고서를 무시합니다. 그리고 실패한 뒤에야 "왜 아무도 나를 말리지 않았어?"라고 화를 냅니다.
이를 막기 위해 필요한 것이 '악마의 변호인(Devil's Advocate)'입니다. 회의할 때 일부러 반대 입장을 취하며 비판하는 역할을 지정하는 것입니다. "부장님 말씀이 맞다는 전제하에, 만약 실패한다면 어떤 이유 때문일까요?" 내 생각을 공격하는 질문을 의도적으로 던져야만 뇌의 편향 필터가 잠시 꺼지고, 보이지 않던 진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요약 및 결론
확증 편향은 자신의 선입견이나 주장을 뒷받침하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수용하고, 반대 정보는 무시하는 인지 오류입니다. 이는 뇌가 신념을 바꾸는 에너지 소모를 피하려 하기 때문이며, 알고리즘 알고리즘은 이를 더욱 강화(필터 버블)시킵니다.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위해서는 의도적으로 반대 의견을 제시하는 '악마의 변호인'을 두어 균형을 잡아야 합니다.
📌 Curiosity's Insight: 나는 보고서를 쓴 게 아니라, 소설을 쓰고 있었다
# 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조사나 해
입사 4년 차, 대리였던 저는 신규 사업 TF팀에 들어갔습니다. 당시 저는 '구독 모델'에 꽂혀 있었습니다. "요즘 대세는 무조건 구독이야. 우리 제품도 구독으로 돌리면 대박 날 거야."
저는 확신에 차서 시장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고객 데이터를 까보니 반응이 미지근했습니다. "굳이 이걸 매달 돈 내고 쓰고 싶지 않아요." "그냥 필요할 때 하나씩 살래요." 부정적인 피드백이 60%가 넘었습니다. 제 가설이 틀렸다는 명백한 신호였죠.
하지만 저는 그 데이터를 보고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고객들이 아직 구독의 가치를 잘 몰라서 그래. 마케팅으로 설득하면 돼. 그리고 이 설문조사는 표본이 잘못됐어. 우리 제품을 잘 모르는 사람들한테 물어보니까 그렇지."
저는 제 입맛에 맞지 않는 데이터는 '오류' 취급하며 휴지통에 버렸습니다. 그리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40%의 데이터만 긁어모았습니다. 심지어 해외의 성공 사례만 잔뜩 찾아다 붙였습니다. 그렇게 완성된 보고서는 완벽해 보였습니다. (사실은 조작된 소설이었지만요.)
# 나를 막아선 김 과장이 미웠다
팀 회의 시간, 저는 자신만만하게 발표했습니다. 다들 고개를 끄덕이는데, 평소 깐깐하기로 소문난 김 과장님이 손을 들었습니다. "김 대리, 해외 사례는 좋은데, 국내 시장 환경은 좀 다르지 않아? 그리고 부정적 피드백에 대한 대비책이 너무 부실한데?"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아, 저 꼰대. 또 트집 잡네. 혁신을 몰라, 혁신을.' 저는 얼굴을 붉히며 방어했습니다. "과장님, 지금은 트렌드를 선점하는 게 중요합니다. 리스크만 따지다가 기회 다 놓칩니다." 결국 제 목소리가 컸고, 프로젝트는 제 주장대로 진행되었습니다. 김 과장님은 "그래, 한번 해보자"며 물러섰고요.
# 10억을 날리고 깨달은 진실
6개월 뒤, 결과는 처참한 실패였습니다. 런칭 초기 반짝 관심을 끌었지만, 고객들은 김 과장님이 우려했던 바로 그 이유(비싼 가격, 낮은 활용도) 때문에 줄줄이 해지했습니다. 회사는 마케팅 비용으로 10억 원을 날렸고, TF팀은 해체되었습니다.
술자리에서 펑펑 울며 자책하는 저에게 김 과장님이 소주 한 잔을 따라주며 말했습니다. "김 대리, 자네가 열정이 넘쳐서 그런 거야. 원래 사람은 자기가 사랑하는 아이디어에는 눈이 머는 법이거든."
그때 깨달았습니다. 김 과장님은 저를 괴롭히는 '적'이 아니라, 제가 보지 못하는 사각지대를 비춰주려 했던 '조력자'였다는 것을요. 제 눈을 가린 건 김 과장님이 아니라, '내 말이 무조건 맞아'라는 저의 오만함과 확증 편향이었습니다.
# "내가 틀렸을 수도 있다"는 주문
그 후로 저는 업무 습관을 완전히 바꿨습니다. 보고서를 쓸 때, 제 주장을 뒷받침하는 자료를 3개 찾으면, 반드시 제 주장을 반박하는 자료도 3개를 찾습니다. 그리고 회의 시간에 누군가 내 의견에 반대하면, 본능적으로 올라오는 화를 꾹 누르고 3초 동안 주문을 외웁니다.
"저 사람이 나를 공격하는 게 아니다. 저 사람은 내가 못 보는 낭떠러지를 보고 있다. 저 말이 10억짜리 조언일 수 있다."
여러분, 내 말에 동의해 주는 사람은 기분을 좋게 해 주지만, 내 말에 반대하는 사람은 나를 성장하게 해 줍니다. "부장님은 꽉 막혔어"라고 욕하기 전에 한번 돌아보세요. 혹시 귀를 막고 있는 건 부장님이 아니라, '나는 무조건 옳다'라고 믿는 당신 자신은 아닌지. 진짜 똑똑한 사람은 정답을 맞히는 사람이 아니라, 오답 노트(반대 의견)를 꼼꼼히 챙기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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