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프로젝트, 지금이라도 접는 게 낫지 않을까요?" "야, 지금까지 들어간 돈이 얼만데 이제 와서 포기해? 무조건 고(Go) 해!"
우리는 종종 합리적인 판단보다 '본전 생각'에 휘둘립니다. 재미없는 영화를 예매했으면 중간에 나오는 게 시간 낭비를 줄이는 길인데도, "티켓값이 아까워서" 끝까지 앉아있습니다. 주식이 반 토막 났는데도 "기다린 시간이 아까워서" 더 떨어질 때까지 붙들고 있습니다.
경제학에서는 이미 지출해서 다시는 회수할 수 없는 비용을 매몰 비용(Sunk Cost)이라고 합니다. 오늘은 제가 '포기'할 용기가 없어서 회사의 거액을 날려먹은 뼈아픈 실패담을 통해, 왜 멈추는 것이 가장 위대한 전략인지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1. 멈추지 못한 프로젝트가 남긴 3억 원의 청구서
1) "이건 무조건 되는 사업이야"
입사 5년 차, 제가 처음으로 메인 PM을 맡았던 신규 앱 개발 프로젝트 때의 일입니다. 초기 예산은 5천만 원이었습니다. 시장 조사도 완벽했고, 기획안도 임원진의 만장일치로 통과되었습니다. "이건 대박이다. 내 커리어의 하이라이트가 될 거야."
저는 자신만만하게 개발을 시작했습니다. 개발팀 3명과 디자이너 1명을 배정받았고, 우리는 매일 밤을 새우며 앱을 만들었습니다. 3개월 뒤면 세상에 없던 서비스가 나올 거라 확신했습니다. 하지만 런칭 예정일이 다가올수록 문제가 터지기 시작했습니다. 핵심 기능에 치명적인 버그가 발견되었고, 하필이면 경쟁사가 우리보다 한 달 먼저 비슷한 서비스를 런칭해 버린 것입니다.
2) 5천만 원을 포기하지 못해 2억을 베팅하다
냉정하게 보면 그때 멈췄어야 했습니다. 경쟁사가 선점한 시장에, 버그가 많은 앱으로 들어가면 승산이 없었으니까요. 초기 예산 5천만 원만 손해 보고 끝내는 게 회사엔 이익이었습니다.
하지만 제 머릿속엔 '5천만 원'과 '지난 3개월의 야근'이 너무 크게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지금 그만두면 나는 회사 돈 5천만 원을 그냥 허공에 날린 무능한 팀장이 되잖아. 어떻게든 살려내서 증명해야 해.'
저는 경영진을 찾아가 설득했습니다. "경쟁사 앱보다 우리 UI가 더 좋습니다. 마케팅만 제대로 하면 뒤집을 수 있습니다. 1억만 더 투자해 주십시오." 경영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도 실패를 인정하기 싫었으니까요. "그래, 지금까지 쓴 돈이 있는데 여기서 엎을 순 없지. 가보자."
3) 호흡기를 떼는 용기
그렇게 '조금만 더'를 외치며 6개월을 더 끌었고, 추가로 들어간 돈은 2억 원이 넘었습니다. 총 3억 원 가까이 쓴 뒤에야 앱을 출시했지만, 시장 반응은 싸늘했습니다. 이미 트렌드가 지난 뒤였고, 경쟁사는 저만치 앞서가고 있었으니까요.
결국 프로젝트는 폐기되었습니다. 처음에 5천만 원 손절매로 끝낼 수 있었던 일이, 제 미련 때문에 3억 원의 손실로 불어난 것입니다. 프로젝트 해체 회식 날, 본부장님이 소주잔을 기울이며 말씀하셨습니다. "김 대리, 자네가 그때 '지금이라도 접겠습니다'라고 했다면 나는 자네를 더 높게 평가했을 거야. 실수를 인정하는 게 진짜 용기거든. 우린 그 5천만 원이 아까워서 2억 5천을 더 버린 꼴이 됐어."
그때 뼈저리게 배웠습니다. '아깝다'는 감정이 드는 순간이 바로 가장 위험한 순간이라는 것을요. 포기는 실패가 아니라, 더 큰 실패를 막는 가장 현명한 투자일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는 몰랐습니다.
2. 왜 우리는 본전 생각에 집착하는가: 매몰 비용 오류
1) 콩코르드 여객기가 남긴 비싼 교훈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는 가장 유명한 사례는 초음속 여객기 '콩코르드'입니다. 영국과 프랑스는 이 비행기를 개발하면서 막대한 적자가 예상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연료비는 비싸고 소음은 심해서 상업성이 없었거든요.
하지만 두 나라는 개발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쏟아부은 돈과 자존심이 얼만데!" 결국 콩코르드는 억지로 운항을 시작했지만, 만성 적자에 시달리다 2003년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매몰 비용 오류를 다른 말로 콩코르드 효과(Concorde Effect)라고도 부릅니다.
2) 손실 회피와 자기 정당화의 함정
합리적인 사람은 의사결정 시 '이미 쓴 돈(매몰 비용)'을 고려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의 우리는 두 가지 심리 때문에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합니다.
첫째, 손실 회피(Loss Aversion) 본능입니다. 인간은 100만 원을 얻는 기쁨보다 100만 원을 잃는 고통을 2배 더 크게 느낍니다. 프로젝트를 중단하는 순간 '투자금'이 '확정된 손실'로 바뀌는 고통을 피하고 싶은 것입니다.
둘째, 자기 정당화(Self-Justification) 욕구입니다. 중단을 선언하는 것은 "내 과거의 결정이 틀렸다"고 인정하는 셈이 됩니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기 싫어서, 희망 고문을 하며 억지로 프로젝트를 끌고 갑니다.
3) 미래 가치로만 판단하라
매몰 비용 오류는 이미 지출하여 회수할 수 없는 비용(돈, 시간, 노력)에 집착하여, 비합리적으로 현재의 행동을 지속하는 현상입니다. 이미 들어간 돈이 아까워서 추가 투자를 하는 것은, 구멍 난 독에 물 붓기가 아니라 구멍을 더 크게 뚫는 행위입니다. 현명한 의사결정을 위해서는 과거의 투입량은 철저히 무시하고, '지금부터 얼마를 더 쓰면 얼마를 벌 수 있느냐(미래 가치)'만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3. 요약 및 결론
매몰 비용 오류는 이미 지출하여 회수할 수 없는 비용(돈, 시간, 노력)에 집착하여 비합리적으로 현재의 행동을 지속하는 현상입니다.
프로젝트를 중단할 때 발생하는 확정적 손실의 고통을 피하려는 심리와, 자신의 과거 결정이 틀렸음을 인정하기 싫어하는 자기 정당화 욕구가 주요 원인입니다.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리려면 과거에 투입한 자원은 철저히 배제하고, 오직 현재 시점부터 추가로 들어갈 비용과 앞으로 얻게 될 미래 가치만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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