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술보다 무서웠던 ‘조직의 관성’
한때 코닥은 사진의 대명사였습니다.
노란색 필름 통만 봐도 “사진은 코닥”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떠올랐고, ‘코닥 모멘트(Kodak Moment)’라는 말은 인생의 소중한 순간을 포착하는 장면을 뜻하곤 했죠. 20세기 후반까지 코닥은 전 세계 필름 시장의 80% 이상을 차지하며 사진 산업을 완전히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생각보다 빠르게 변했습니다. 디지털카메라, 스마트폰이 전면에 등장하자, 코닥의 제국은 순식간에 무너졌습니다. 아이러니한 건, 1975년 세계 최초의 디지털카메라를 만든 사람이 바로 코닥의 연구원이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코닥은 그 기술을 스스로 묻어버렸습니다. “디지털이 필름을 죽일 것이다”라는 두려움 때문이었죠. 기술은 있었지만, 그것을 받아들일 용기는 없었습니다. 결국 코닥은 기술이 아닌 ‘조직의 관성’ 때문에 무너졌습니다.
유능한 CEO와 보수적인 제국의 충돌
1993년, 코닥은 위기 돌파를 위해 모토로라 출신의 조지 피셔(George M. Fisher)를 CEO로 영입했습니다. 그는 디지털 전환이라는 거대한 흐름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 혁신가였습니다. 그는 코닥을 단순한 필름 회사가 아니라 ‘이미지 솔루션 기업’으로 재정의하려 했습니다. 디지털카메라, 온라인 인화 서비스, 사진 저장 플랫폼 등, 지금 들어도 앞선 발상을 잇따라 내놓았죠.
문제는 그의 구상이 너무 앞서 있었고, 조직은 너무 뒤에 있었다는 겁니다. 코닥 내부에는 여전히 “우리는 필름으로 세계를 지배한 회사”라는 자부심(혹은 착각)이 짙게 남아 있었습니다.
그 자부심은 시간이 흐르며 보수성과 위험 회피로 바뀌었습니다. 보상 체계 역시 여전히 필름 매출에 맞춰져 있었고, 디지털 사업은 ‘장기적으로는 의미 있을지도 모를 실험’ 정도로 여겨졌습니다.
즉, 리더는 변화를 외쳤지만 조직은 듣지 않았던 겁니다.
그 결과, 혁신 아이디어가 나와도 “그건 필름 매출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무시되었습니다. 코닥은 자신이 쌓아 올린 성공의 기억 속에 스스로 갇혀버린 셈이죠. 이런 현상을 경영학에서는 ‘성공의 함정(success trap)’이라 부릅니다. 코닥에게는 실패의 공포보다 ‘성공을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컸습니다.
‘디지털카메라’를 두려워한 조직
1990년대 후반, 코닥의 디지털카메라 부서는 빠르게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작 회사 내부에서는 이 부서를 경계했습니다. 필름 부문 임원들은 “디지털이 우리의 본업을 위협한다”며 예산 삭감을 요구했고, 마케팅 부서는 “소비자는 여전히 필름 사진의 감성을 원해”라는 말을 반복했습니다. 이처럼 조직 내부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힘을 썼으니 제대로 된 혁신이 일어날 리 없었죠.
신제품 개발은 수차례 연기되었고, 그 사이 소니, 캐논, 니콘 같은 경쟁사들이 시장을 장악했습니다. 뒤늦게 디지털 시장에 뛰어들었을 때는 이미 소비자 인식 속 ‘혁신의 주인공’ 자리는 다른 기업들 차지였습니다.
경영학자 클레이튼 크리스텐슨은 『혁신가의 딜레마(The Innovator’s Dilemma, 1997)』에서 이를 “파괴적 혁신에 대응하지 못한 전형적 실패”로 꼽았습니다.
코닥은 기술이 아니라, ‘변화를 두려워하는 문화’에 패했습니다.
리더가 아니라, 조직이 문제였다
조지 피셔는 디지털 전략의 방향을 정확히 제시했지만, 정작 그가 마주친 것은 기술적 난관이 아니라 사람들의 저항이었습니다. “아직 필름으로 충분히 돈 벌고 있는데 왜 바꾸어야 하나?”라는 말이 조직 곳곳에서 들려왔습니다. 문화적 벽이 리더십의 추진력을 완전히 눌러버린 것이죠.
O’Reilly와 Tushman(2004)은 코닥을 ‘양손잡이 조직(ambidextrous organization)’에 실패한 대표 사례로 분석했습니다. 결국 코닥은 현재의 이익(필름)과 미래의 기회(디지털)를 동시에 잡지 못했습니다. 리더십이 존재해도, 조직이 따라오지 못하면 변화는 공허한 구호에 불과합니다.
혁신을 가로막은 건 기술이 아니라 ‘문화’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HBR)는 2012년 이후 코닥을 “리더십 부재가 아닌,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조직 DNA의 실패”로 규정했습니다. 언뜻 보면 코닥은 노력했습니다. 디지털 프린터, 온라인 인화, 이미지 공유 서비스까지 시도했지만 시장은 냉담했습니다. 소비자에게 ‘디지털 혁신’ 하면 떠오르는 브랜드는 이미 애플과 캐논이었으니까요.
결국 코닥은 2012년 파산보호를 신청했습니다. 돈도, 기술도 있었지만 조직문화는 변화를 끝내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코닥의 몰락은 한 명의 CEO가 이룰 수 있는 혁신에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리더 한 사람의 비전보다 더 중요한 건, 조직 전체가 그 비전을 ‘자기 일처럼 믿고 움직이는가’입니다.
혁신의 본질은 기술이 아니라 사람이다
코닥의 실패는 단순한 산업 변화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리더십이 문화에 패배한 사건이었습니다. 진정한 혁신은 새로운 기술을 내놓는 데 있지 않습니다. 그것을 받아들일 ‘사람들의 마음과 태도’를 함께 바꾸는 데 있습니다. 조직이 변화의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것이 자신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느끼지 못한다면 혁신은 결코 뿌리내릴 수 없습니다.
한때 ‘사진 그 자체’였던 코닥은 결국 자기 성공의 그림자 속에서 사라졌습니다. 이 이야기가 남긴 교훈은 단순합니다.
기술은 변하지만, 사람의 마음이 변하지 않으면 아무리 훌륭한 기술도 빛을 잃을 수 있다는 것. 진짜 혁신은 언제나 사람에게서 시작된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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