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 부서에서 수많은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깨달은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위에서 시켜서 억지로 떠맡은 프로젝트보다, 실무자가 처음부터 끝까지 주도적으로 기획한 프로젝트일수록 예상하지 못한 외부 변수에 취약한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직장인들의 최대 관심사인 주식 투자와 열정 넘치는 업무 몰입도 사이에 숨겨진 심리학적 공통점을 파헤쳐 보겠습니다.
1. 나의 야심 찬 프로젝트는 왜 무너졌을까
1) 실패 가능성을 거의 고려하지 않았던 기획안
몇 년 전, 저는 스마트 홈 연동 모듈을 개발하는 신규 프로젝트의 PM을 맡았어요. 당시 저는 기획안 작성부터 부품 소싱, 개발 일정 관리까지 직접 챙기며 프로젝트를 주도했습니다. 제가 직접 모든 과정을 세세하게 관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실패 가능성을 거의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타 부서에서 출시 일정이 너무 빠듯한 것 아니냐고 우려했을 때도, 제가 일정과 변수를 모두 파악하고 있으니 문제없다며 자신 있게 넘겼습니다. 제가 쥐고 있는 계획표대로만 움직이면 당연히 성공할 것이라 생각했었어요.

2) 통제할 수 없는 외부 변수의 습격
하지만 제 계획은 양산을 불과 한 달 앞두고 틀어졌습니다. 제품 내부의 결함 때문이었냐고요? 아니요. 전혀 예상치 못한 거대한 외부 변수가 발생했기 때문이었어요.
출시를 앞둔 시점에 주요 플랫폼 사업자의 정책 변경으로 연동 방식에 큰 수정이 필요해졌습니다. 제가 관리하던 내부 일정이나 부품 스펙과는 전혀 무관하게, 외부 생태계의 정책 변화 하나에 반년 간의 프로젝트가 그 자리에서 멈춰 섰습니다. 제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 밖의 일이 벌어지자 그간의 계획이 무용지물이 된 것입니다.
2. 주식 창 앞의 개미와 R&D 회의실의 팀장은 왜 똑같을까?
1) 내가 분석한 종목은 오를 것이라는 믿음
프로젝트 일정이 어그러지고 허탈한 마음으로 퇴근했던 날, 집에서 주식 계좌를 열어보고는 묘한 기시감을 느꼈습니다. 제 업무 방식과 주식 투자 방식이 소름 끼치도록 똑같았기 때문입니다.
당시 제 계좌에는 A라는 기술주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 회사의 재무제표를 뜯어보고, 증권사 리포트를 꼼꼼히 읽으며 직접 분석을 마친 상태였죠. 내가 직접 공부하고 주도적으로 골랐으니 이 종목은 괜찮을 것이라며 꽤 큰 비중을 실었어요.
하지만 그 주식은 거시 경제의 금리 인상 이슈와 겹치며 큰 폭으로 하락했습니다. 제가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던 실적이나 숫자는 글로벌 경제라는 거대한 외부 변수 앞에서는 전혀 힘을 쓰지 못했습니다. R&D 회의실에서 느꼈던 그 무력감과 정확히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2) 심리학이 진단하는 오류: 통제의 환상
내가 직접 분석했고 내가 주도했으니 결과도 내가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 심리학에서는 이를 통제의 환상(Illusion of Control)이라고 불러요. 우연이나 외부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 결과임에도, 자신의 개입과 노력으로 그 결과를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인지적 오류입니다.
하버드대학교의 심리학자 엘런 랭어는 유명한 복권 실험으로 이 환상을 증명했습니다. 사람들에게 1달러짜리 복권을 나누어 주었는데, 한 그룹은 무작위로 번호를 받았고 다른 그룹은 직접 번호를 고르게 했습니다. 며칠 뒤 연구진이 복권을 다시 되팔라고 하자, 무작위로 받은 사람들은 1.9달러를 요구했지만 직접 번호를 고른 사람들은 무려 8.6달러를 요구했습니다.
당첨 확률은 100% 운의 영역인데도, 번호를 직접 골랐다는 주도성이 당첨 확률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는 거대한 환상을 만들어낸 것이에요.
3. 통제의 환상이 조직을 망치는 3가지 부작용
현장에서 통제의 환상에 빠진 실무자들은 다음과 같은 치명적인 함정에 빠집니다.
- 타 부서의 조언을 간섭으로 치부한다: 자신이 프로젝트를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외부의 객관적인 피드백을 불필요한 태클로 여깁니다. 결국 프로젝트는 고립되고 시야는 좁아져요.
- 만약의 사태를 대비한 플랜 B가 없다: 자신의 통제력으로 리스크를 막을 수 있다고 확신하므로 대안을 세우지 않아요. 그래서 정책 변화나 시장 변동 같은 외부 변수 하나만 터져도 모든 것이 멈춰 섭니다.
- 권한 위임 실패와 수동적인 팀원들: 모든 것을 직접 통제하려 들기 때문에 권한 위임을 하지 못해요. 담당자는 과도한 업무량에 지치고, 팀원들은 지시만 기다리는 수동적인 역할에 머물게 됩니다.
4. 환상에서 벗어나는 업무 매뉴얼
주도적으로 일하는 태도는 분명 훌륭합니다. 하지만 내 노력이 비즈니스의 모든 결과를 보장한다는 생각은 위험하죠. 이후 저는 기획안을 검토할 때 두 가지 룰을 추가했습니다.
- 통제 불가능 변수 리스트업: 기획서 마지막 장에 반드시 통제 불가능한 외부 변수를 적게 해요. 환율 변동, 경쟁사의 기습적인 신제품 출시, 주요 플랫폼의 정책 변화 등 내 노력과 무관한 일들을 눈으로 확인하면 과도한 확신을 덜어낼 수 있습니다.
- 의도적인 권한 분산: 아무리 한 사람이 주도한 프로젝트라도, 최종 QA 검증이나 테스트 단계에서는 프로젝트에 깊이 관여하지 않은 다른 팀원에게 결정 권한을 일부 넘겨줍니다. 내가 쥔 운전대를 잠시 남에게 넘겨주어야만 내가 보지 못했던 사각지대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주식 시장에서 차트를 오래 쳐다본다고 주가가 오르지 않듯, 비즈니스 현장에서도 나의 주도성이 모든 변수를 통제해주지는 않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과 내가 어쩔 수 없는 외부의 변수를 분리하는 태도가 불확실한 환경에서 프로젝트를 끝까지 끌고 가는 현실적인 방법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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