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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행동 이야기

[심리학 실험실] 퇴근 시계만 보던 막내 사원이 자발적 워커홀릭이 된 진짜 이유

by 호기심의 항구 2026. 5. 21.

오후 5시 30분, 사무실에는 보이지 않는 두 가지 부류의 사람이 존재합니다. 한 명은 모니터 우측 하단의 시계에서 눈을 떼지 못하며 정각 6시가 되기만을 간절히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반면, 다른 한 명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복잡한 데이터와 씨름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7시, 8시까지 자리를 지킵니다.

우리는 흔히 전자를 월급루팡이나 무기력한 직원으로, 후자를 책임감 강한 우수 직원으로 섣불리 평가하곤 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정말 개인의 성실함이나 타고난 열정의 차이일까요?

오늘은 1970년대에 진행되었던 아주 기상천외한 심리 실험 하나를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이 낡은 실험실의 결과표를 들여다보면, 늘 퇴근만 기다리던 직원을 일에 미치게 만드는 놀라운 비밀을 발견하실 수 있습니다.

지루함을 견디지 못해 사무실에서 하품을 하는 직장인의 모습
AI활용 제작

1. 1970년대의 실험실: 삐삐(호출기)가 울리면 당신의 기분을 적어주세요

미국의 긍정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Mihaly Csikszentmihalyi) 교수는 사람들이 언제 가장 큰 행복감과 만족감을 느끼는지 알아내기 위해 독특한 연구를 기획했습니다. 바로 경험 표집법(Experience Sampling Method)이라는 방식이었습니다.

연구팀은 평범한 직장인, 학생, 예술가 등 수천 명의 참가자에게 당시 사용되던 호출기(삐삐)와 작은 수첩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무작위로 하루에 8번씩 호출기를 울리게 세팅했죠. 참가자들은 삐삐가 울릴 때마다 자신이 지금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그리고 그때의 기분과 집중도는 어땠는지를 수첩에 즉각적으로 기록해야 했습니다.

실험을 시작하기 전, 대부분의 학자들은 사람들이 소파에 누워 TV를 보거나 휴양지에서 쉴 때 가장 큰 행복을 느낄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수십만 건의 데이터가 모인 결과표는 학계의 예상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습니다.

참가자들이 가장 큰 즐거움과 성취감을 보고한 순간은 편안하게 쉴 때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야만 해결할 수 있는 어렵고 까다로운 작업에 깊이 빠져 있을 때, 사람들은 시간의 흐름조차 잊을 만큼 극도의 희열을 느꼈다고 답했습니다. 칙센트미하이 교수는 이처럼 어떤 일에 무아지경으로 빠져드는 상태를 몰입(Flow)이라고 명명했습니다.

2. 우리 사무실에서 재현된 삐삐 실험: 무기력에 빠진 이 사원

이 위대한 몰입 실험의 결과는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제가 일하는 부서의 사무실에서도 정확하게 재현되고 있었습니다.

제 팀에는 입사 2년 차 이 사원이 있었습니다. 신입 시절에는 똘똘하고 손이 빠르기로 유명했던 친구인데, 어느 순간부터 업무 시간에 멍하게 화면만 바라보거나 의미 없이 인터넷 창을 껐다 켜는 모습이 자주 포착되었습니다. 당연히 성과도 떨어졌고, 퇴근 시간만 되면 안도하는 표정이 역력했죠.

처음에는 이 사원의 멘탈이나 태도에 문제가 생겼다고 생각해 따로 불러 면담을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놀라운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이 사원은 일이 싫거나 게을러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이 사원에게는 사내 R&D 테스트 결과를 단순히 엑셀로 취합하고 오탈자를 검수하는 아주 기본적인 업무가 배정되어 있었습니다. 입사 초기에는 그 일조차 버거웠지만, 2년 차가 되면서 이제는 눈을 감고도 할 수 있을 만큼 실력이 쌓여버린 것이죠. 자신의 능력치에 비해 주어지는 과제가 너무 쉽고 단순하다 보니, 뇌가 파업을 선언하고 극심한 지루함(Boreout)에 빠져버린 상태였습니다.

3. 지루함과 불안감 사이, 몰입이라는 마법의 채널

칙센트미하이 교수는 몰입이 아무 때나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인간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일에 빠져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두 가지 조건의 완벽한 밸런스가 필요합니다. 바로 개인의 실력과 과제의 난이도입니다.

이 두 가지 축을 기준으로 직장인들의 심리 상태를 네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 실력은 높은데 과제가 너무 쉬울 때: 지금의 이 사원처럼 심각한 지루함과 무기력에 빠집니다. 아무런 자극이 없으니 퇴근 시간만 기다리게 됩니다.
  • 실력은 낮은데 과제가 너무 어려울 때: 엄청난 불안감과 스트레스에 시달립니다. 매일 출근하는 것이 공포 그 자체가 됩니다.
  • 실력도 낮고 과제도 쉬울 때: 무관심 상태가 되어 조직에 아무런 기여를 하지 않는 진정한 월급루팡이 탄생합니다.
  • 실력과 과제 난이도가 팽팽하게 균형을 이룰 때: 비로소 마법의 몰입 채널이 열립니다. 내 능력을 120퍼센트 끌어올려야만 달성할 수 있는 도전적인 목표를 만났을 때, 직장인은 아드레날린을 분비하며 워커홀릭으로 돌변합니다.

4. 김 팀장의 처방전: 직원을 춤추게 하는 난이도 튜닝

이 사원의 상태를 정확히 진단한 후, 저는 팀장으로서 즉각적인 처방을 내렸습니다. 이 사원을 괴롭히던 단순 취합 업무는 과감하게 부서 공용 자동화 툴로 넘겨버렸습니다. 그리고 이 사원에게 신규 프로젝트의 기초 데이터를 활용해 타겟 고객의 숨은 니즈를 도출해 보라는 심화 분석 미션을 던졌습니다.

이 사원의 현재 역량으로는 한 번에 풀어내기 벅찬 수준이었지만, 며칠 밤낮으로 치열하게 고민하고 선배들의 조언을 구하면 충분히 도달할 수 있는 딱 한 뼘 더 어려운 난이도의 과제였습니다.

놀랍게도 며칠 뒤, 사무실의 풍경이 바뀌었습니다. 무기력하게 시계만 보던 이 사원의 눈빛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습니다. 퇴근 시간이 훌쩍 넘었는데도 모니터에 코를 박고 해외 논문을 뒤적이며 데이터와 씨름하고 있었습니다. "팀장님, 이 데이터 파고들수록 너무 흥미로운데요? 내일까지 가설 하나만 더 검증해 보고 다시 보고드리겠습니다!"라며 상기된 목소리로 말하던 그 순간, 저는 1970년대의 그 삐삐 실험이 완벽하게 증명되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5. 결론: 리더는 가장 훌륭한 게임 디자이너가 되어야 한다

종종 리더들은 팀원들이 주도적으로 일하지 않고 시간만 때운다며 답답함을 토로합니다. 하지만 직원의 무기력은 개인의 근성 부족이라기보다, 리더가 업무의 난이도를 잘못 세팅해서 발생한 시스템 오류일 확률이 훨씬 높습니다.

게임에 빠진 아이들을 보십시오. 첫 번째 판이 너무 쉬우면 금방 게임기를 꺼버리고, 보스몹이 너무 강력해 계속 죽기만 하면 짜증을 내며 포기합니다. 내 실력으로 아슬아슬하게 깰 수 있을 때 아이들은 밤을 새워 게임에 몰입합니다.

직장도 마찬가지입니다. 뛰어난 리더는 직원의 태도를 탓하기 전에, 팀원들의 역량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들이 지루함이나 불안감에 빠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업무 난이도를 조율하는 게임 디자이너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 팀원들의 모니터 화면을 다시 한번 유심히 살펴보십시오. 그들은 지금 몰입의 즐거움을 누리고 있습니까, 아니면 지루한 퇴근 시간을 견뎌내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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