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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행동 이야기

[리더십 오답노트] 운 좋게 대박 난 프로젝트가 우리 팀을 망친 이유 (결과 편향)

by 호기심의 항구 2026. 5. 28.

필수적으로 봐야할 산더미 처럼 쌓인 서류를 한켠에 몰아두고, 얇은 몇장의 보고서만 검토하는 직원과 이를 눈감아 주는 팀장의 모습
AI 활용 제작

회사에서 실무자와 팀장으로 15년의 시간을 보내며 뼈저리게 느낀 진리가 하나 있습니다. 실패한 프로젝트보다 훨씬 더 위험한 것은 운 좋게 대박이 난 나쁜 프로젝트라는 사실이죠

오늘 리더십 오답노트에서는 과정이 엉망이어도 결과만 좋으면 모든 것이 용서되는 조직이 어떻게 서서히 무너지는지, 제 과거의 경험을 통해 고백해보려 합니다.

1. R&D 팀장의 착각: 절차를 무시한 독단이 추진력으로 둔갑한 날

몇 년 전, 시장 트렌드가 급변하면서 경쟁사보다 무조건 먼저 신제품을 출시해야 하는 압박감에 시달리던 때였습니다. 당시 우리 팀의 최 책임은 마감 기한을 맞추겠다며 우리 R&D 부서의 필수적인 데이터 교차 검증 절차와 안전성 테스트 과정을 임의로 대폭 생략해 버렸습니다. 팀장인 제가 정해둔 최소한의 안전 가이드라인을 어긴 명백한 항명이자 위험천만한 도박이었어요.

하지만 결과는 어땠을까요? 운 좋게도 그 신제품은 시장에 나오자마자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고, 그해 부서 역대 최고 매출을 갈아치웠습니다.

절차를 무시한 최 책임에게 저는 어떤 평가를 내렸을까요? 놀랍게도 저는 연말 인사 평가에서 그에게 S등급을 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규정에 얽매이지 않고 유연하게 대처한 덕분에 경쟁사를 이길 수 있었어. 정말 대단한 추진력이야."

성공이라는 달콤한 결과에 취해, 엉망진창이었던 과정을 눈감아주고 오히려 칭찬해 버린 최악의 오답이었습니다.

2. 결과 편향의 저주: 에이스는 떠나고 도박꾼만 남는 조직

이듬해, 우리 팀에는 끔찍한 나비효과가 불어닥쳤습니다. 최 책임의 S등급 수상을 지켜본 다른 팀원들의 업무 방식이 완전히 달라진 것이에요.

꼼꼼하게 데이터를 검증하고 리스크를 방어하던 성실한 연구원들은 답답한 사람 취급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대신 너도나도 안전 테스트를 건너뛰고 자극적인 결과물만 빨리 만들어내는 데 혈안이 되었습니다. '어차피 대박만 나면 과정은 다 용서되잖아?'라는 인식이 팀 전체를 전염시킨 것이죠.

결국 얼마 가지 않아 사달이 났습니다. 필수 검증을 건너뛴 또 다른 프로젝트에서 치명적인 결함이 발견되어 출시 직전에 전량 폐기 처분을 해야 했고, 부서는 수억 원의 손실을 떠안았습니다. 과정은 엉망이어도 결과만 좋으면 칭찬받는 회사의 함정이 조직의 근간을 뒤흔든 순간이었습니다.

3. 심리학이 진단하는 리더의 오류: 결과 편향

제가 저질렀던 이 치명적인 실수를 심리학에서는 결과 편향(Outcome Bias)이라고 부릅니다. 이는 의사결정을 내렸던 당시의 상황, 논리적 타당성, 과정의 질은 깡그리 무시한 채 오직 최종 결과만 가지고 판단의 옳고 그름을 평가하려는 인지적 오류를 뜻합니다. 과정이 아무리 훌륭하고 합리적이었어도 결과가 나쁘면 멍청한 결정으로 비난받고, 반대로 도박에 가까운 무모한 짓이었어도 결과만 대박이 나면 훌륭한 결단으로 칭송받는 현상입니다.

1988년 심리학자 조나단 바론의 실험에서도 이 편향이 여실히 드러나요. 성공 확률이 8%에 불과한 매우 위험한 수술을 강행한 의사에 대해, 환자가 생존했을 때 사람들은 의사에게 칭찬을 쏟아냈지만, 환자가 사망하자 무모하고 비윤리적이라며 맹비난을 퍼부었습니다. 수술을 결정했던 당시 의사의 판단 근거는 완벽하게 동일했는데도 말입니다.

저 역시 R&D 현장에서 최 책임이 강행한 8% 확률의 도박이 우연히 성공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훌륭한 인재로 착각했던 것입니다.

4. 결과 편향을 끊어내는 건강한 평가 시스템

조직이 결과 편향의 늪에 빠지면 결국 운에 의존하는 도박꾼들만 살아남고, 묵묵히 시스템을 지키는 진짜 에이스들은 억울함을 느끼며 회사를 떠나게 됩니다. 리더는 이 악순환의 고리를 반드시 끊어내야 해요.

  • 훌륭한 실패와 나쁜 성공을 구분하세요. 성공과 실패를 평가할 때 반드시 과정의 꼬리표를 달아야 합니다. 철저한 데이터 분석과 검증을 거쳤으나 시장의 외부 요인으로 실패한 훌륭한 실패는 과정에 대한 보상을 주어야 하고요, 반대로 운이 좋아 성공했을 뿐인 나쁜 성공에는 철저하게 리스크 관리 부재를 경고해야 합니다.
  • 사후 검토(AAR)를 시스템화하시기 바랍니다. 결과가 나온 뒤에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중간 과정마다 당시의 정보와 판단 기준을 기록으로 남겨야 합니다. 결과가 대박이든 쪽박이든 상관없이, 사후 검토 미팅에서는 오직 그 과정의 결정들이 합리적이었는지만 복기하는 문화가 정착되어야 해요.

결과가 모든 것을 증명한다는 말은 조직 생활에서 가장 달콤하고도 위험한 독약입니다. 결과의 화려함에 눈이 멀어 과정의 부실함을 눈감아주는 리더는, 결국 다음 턴에 찾아올 거대한 재앙을 스스로 키우는 것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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