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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행동 이야기

MBTI 맹신주의, 회사는 왜 성격 검사에 집착할까? (feat. Big 5 성격 모델)

by curiousways 2025. 12. 8.

MBTI 관련 사진

 

"자네는 MBTI가 뭔가? 우리 팀은 E(외향형)가 필요해서 말이야." "저는 INFP라서 영업직이랑은 안 맞을 것 같아요."

요즘 입사 면접이나 팀 배정 면담에서 심심찮게 들리는 대화입니다. 혈액형 성격론이 지배하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MBTI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일부 기업은 채용 공고에 '특정 MBTI 선호' 혹은 '사절'을 명시해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서로를 이해하는 도구로 쓰이면 좋겠지만, 사람을 재단하고 평가하는 도구로 변질된 MBTI. 과연 기업이 이 네 글자 알파벳에 의존하는 것이 과학적으로 타당할까요? 오늘은 대중적인 MBTI와 학계에서 인정받는 Big 5 성격 모델을 비교하며, 성격 검사의 올바른 활용법을 알아보겠습니다.

1. MBTI는 '진단 도구'가 아니라 '분류 놀이'에 가깝다

우리가 흔히 쓰는 MBTI는 심리학자 융(Jung)의 심리유형론을 바탕으로 마이어스와 브릭스 모녀가 개발한 검사입니다. 문제는 이 검사가 현대 심리학의 엄격한 통계적 검증 기준을 완벽히 충족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가장 큰 맹점은 이분법적 분류입니다. MBTI는 사람을 외향(E) 아니면 내향(I), 사고(T) 아니면 감정(F)으로 딱 잘라 나눕니다. 하지만 실제 인간의 성격은 스펙트럼에 가깝습니다. 세상 인구의 대다수는 완전히 외향적이지도, 완전히 내향적이지도 않은 중간 지점(양향적)에 위치합니다.

또한 검사를 할 때마다 결과가 바뀌는 낮은 재검사 신뢰도 문제도 있습니다. 즉, MBTI는 나의 고유한 기질을 보여주기보다는, 현재 내가 지향하는 모습이나 처한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가면(Persona)에 가깝습니다. 따라서 기업이 이 유동적인 결과를 기준으로 직원의 잠재력을 평가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도박입니다.

2. 학계의 정설: 성격은 5가지 차원(Big 5)으로 설명된다

그렇다면 조직심리학에서는 어떤 도구를 신뢰할까요? 전 세계 심리학자가 인정하는 표준 모델은 Big 5 성격 모델(5요인 모델)입니다. 이는 사람의 성격을 5가지 연속적인 차원으로 설명합니다.

  • 개방성(Openness): 새로운 경험과 아이디어에 대한 수용도
  • 성실성(Conscientiousness): 목표를 향한 끈기와 조직화 능력
  • 외향성(Extraversion): 타인과의 교류에서 에너지를 얻는 정도
  • 친화성(Agreeableness): 타인에 대한 배려와 협조성
  • 신경성(Neuroticism): 스트레스와 불안에 대한 민감도

Big 5가 MBTI와 다른 점은 좋다/나쁘다 혹은 A타입/B타입으로 나누지 않고, 각 요인이 높음/중간/낮음으로 측정된다는 것입니다. 특히 수많은 연구를 통해 직무 성과와 가장 강력한 상관관계가 입증된 요인은 성실성입니다. 어떤 직무든 성실성이 높으면 성과가 좋을 확률이 높습니다. 반면 MBTI의 어떤 유형이 일을 더 잘한다는 증거는 빈약합니다.

3. 다양성이 사라진 조직은 위험하다

기업이 MBTI 같은 도구에 집착하는 진짜 이유는 불확실성을 줄이고 싶기 때문입니다. 우리 팀엔 실행력 강한 ENTJ만 뽑으면 일사천리로 진행될 거야라는 믿음은 채용의 복잡함을 단순화시켜 주는 달콤한 유혹입니다.

하지만 조직심리학은 동질성보다 다양성이 조직의 건강함을 만든다고 강조합니다. 비슷한 성격 유형만 모인 조직은 소통은 빠를지 몰라도, 집단사고(Groupthink)의 함정에 빠지기 쉽습니다. 모두가 Yes를 외칠 때 위험을 감지하는 예민한 사람(높은 신경성)도 필요하고, 앞만 보고 달릴 때 팀원의 마음을 챙기는 사람(높은 친화성)도 필요합니다.

따라서 리더는 나와 같은 성향의 사람을 뽑으려 하기보다, 우리 팀에 부족한 성향을 보완해 줄 사람을 찾아야 합니다. 성격 검사는 채용의 거름망이 아니라, 서로 다른 우리가 어떻게 협업해야 할지를 알려주는 사용 설명서로 쓰여야 합니다.

요약 및 결론

MBTI는 이분법적 분류로 인해 인재를 평가하는 도구로는 과학적 타당성이 부족합니다. 학계에서는 성과 예측력이 검증된 Big 5 성격 모델을 표준으로 사용합니다. 기업은 특정 유형을 맹신하기보다, 다양한 성격이 조화를 이루는 팀 구성을 지향해야 합니다.

📌 Curiosity's Insight: MBTI는 '과학'이 아니라 '언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MBTI가 직장 생활에 쓸모가 있다면, 그것은 진단 도구로서가 아니라 프로토콜(약속된 언어)로서의 가치입니다.

과거에는 상사가 "김 대리는 왜 이렇게 말이 많아?"라고 비난했다면, 지금은 "김 대리는 E 성향이라 에너지가 넘치네"라고 표현합니다. "이 대리는 왜 이렇게 융통성이 없어?"라는 비난은 "J 성향이라 계획을 중요하게 여기는구나"로 순화됩니다.

즉, MBTI는 갈등 상황을 개인의 결함이 아닌 기질의 차이로 인식하게 해주는 완충 언어 역할을 합니다. 이것이 심리적 안전감을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습니다. 리더가 해야 할 일은 MBTI로 직원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차이를 "아, 너는 P구나, 나는 J야"라고 웃으며 넘길 수 있는 팀 내 공통 언어로 정착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