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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행동 이야기

조용한 사직(Quiet Quitting), 그들은 왜 영혼을 집에 두고 출근할까?

by curiousways 2025. 12. 4.

quiet quitting 관련 사진

 

최근 직장인들 사이에서 조용한 사직(Quiet Quitting)이라는 단어가 유령처럼 떠돌고 있습니다. 실제로 사직서를 내는 것은 아니지만, 직장에서 마음은 떠난 상태로 최소한의 업무만 수행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받은 만큼만 일하겠다. 퇴근 후 업무 연락은 절대 받지 않는다. 회사에 내 영혼을 갈아 넣지 않겠다."

기성세대는 이런 모습을 보며 요즘 젊은 친구들은 끈기가 없다거나 책임감이 부족하다고 혀를 차기도 합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심리학의 관점에서 보면, 조용한 사직은 게으름이 아니라 인간의 매우 합리적인 심리적 방어 기제일 수 있습니다. 오늘은 조직심리학의 공정성 이론을 통해 이 현상의 진짜 원인을 파헤쳐 보겠습니다.

1. 내가 일하는 이유는 비교에서 나온다

우리가 직장에서 동기를 얻거나 잃는 원리를 가장 잘 설명해 주는 이론이 바로 아담스(J.S. Adams)의 공정성 이론(Equity Theory)입니다.

이 이론의 핵심은 간단합니다. 인간은 자신의 투입(Input) 대비 산출(Output)의 비율을 타인과 끊임없이 비교한다는 것입니다.

  • 투입(Input): 내가 회사에 바치는 것 (시간, 노력, 헌신, 야근 등)
  • 산출(Output): 회사가 나에게 주는 것 (월급, 승진, 인정, 워라밸 등)

내가 100만큼 노력해서 100을 받았다고 해도, 옆 자리 동료가 50만 노력하고 100을 받는 것을 목격하는 순간, 인간은 불공정함(Inequity)을 느끼고 분노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불쾌한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행동을 취하게 됩니다.

 

[참고] 아담스의 공정성 이론 자세히 보기 

2. 조용한 사직은 투입 조정의 결과다

공정성 이론에 따르면, 불공정함을 느낀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투입을 줄이는 것입니다.

과거 고성장 시대에는 내가 100을 노력하면 회사가 승진이나 연봉 인상이라는 확실한 산출(Output)로 보답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성장 시대인 지금, 회사는 평생고용을 보장하지 않으며 연봉 인상률은 물가 상승률을 따라잡기 벅찹니다.

산출(보상)은 내 마음대로 늘릴 수 없습니다. 회사가 결정하는 것이니까요.

 

그렇다면 개인이 이 불균형을 맞추기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통제 수단은 무엇일까요?

바로 투입(노력)을 줄이는 것입니다.

 

회사가 나에게 월급을 200만 원어치만 준다면, 나도 딱 200만 원어치만 일하겠다. 즉, 조용한 사직은 무책임한 태업이 아니라, 무너진 공정성을 스스로 회복하려는 계산된 행동이자 심리적 자기 방어입니다. 투입을 줄여서라도 마음의 평화를 찾으려는 것이죠.

3. '비교 대상(Referent)'의 폭발적 확장: SNS와 블라인드의 역설

조용한 사직이 최근 들어 급증한 또 다른 이유는 공정성 판단의 기준이 되는 '준거 인물(Referent)'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직장인은 비교 대상이 기껏해야 '옆 자리 김 대리'나 '대학 동기'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인스타그램, 블라인드, 유튜브를 통해 전 세계의 '성공한 타인'들과 자신을 실시간으로 비교합니다.

  • "누구는 코인 대박으로 퇴사했다더라."
  • "판교 IT 기업은 초봉이 얼마라더라."

SNS를 통해 접하는 타인의 산출(Output)은 과장되어 보이기 마련입니다. 이처럼 비교 대상의 수준은 하늘로 치솟았는데 내 현실은 그대로일 때, 상대적 박탈감은 극대화됩니다. 결국 "아무리 노력해도 저들처럼 될 수 없다"는 무기력함이 학습되면서, 직장인들은 노력(Input) 자체를 포기하는 조용한 사직을 선택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

조용한 사직은 게으름이 아니라, 불공정한 보상 체계에 대한 합리적인 투입 조정(Input Adjustment) 행위입니다. 아담스의 공정성 이론에 따르면, 보상(Output)이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 개인은 노력(Input)을 줄여 심리적 균형을 맞춥니다. 조직은 열정을 강요하기보다, 투입과 산출의 공정성을 재점검하고 투명한 보상 체계를 마련해야 합니다.

📌 Curiosity's Insight: 열정 페이의 종말과 '심리적 계약'의 파기

조용한 사직을 단순히 MZ세대의 개인주의 성향으로 치부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기업과 직원 사이에 오랫동안 존재했던 암묵적인 심리적 계약(Psychological Contract)이 파기되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입니다. 

과거의 심리적 계약은 "회사를 위해 헌신(Input)하면, 회사는 너의 미래(Output)를 책임져 준다"였습니다. 하지만 구조조정과 수시 채용이 일상화되면서 이 계약은 깨졌습니다. 회사가 먼저 헌신에 대한 의무를 저버렸기에, 직원들도 헌신을 거두어들이는 것입니다. 

따라서 리더들은 "요즘 애들은 열정이 없어"라고 한탄하기 전에 자문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들의 열정에 합당한 공정한 교환을 하고 있는가?" 

해결책은 강요된 열정이 아니라 투명한 거래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줄 수 있는 보상의 한계가 명확하다면, 직원이 투입해야 할 노력의 한계도 명확히 인정해 주어야 합니다. 조용한 사직을 막는 유일한 방법은 시끄러운 잔소리가 아니라, 투입과 산출의 저울을 다시 공정하게 맞추는 시스템의 변화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