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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행동 이야기

"다음 주 월요일부터 진짜 한다": 미루기 장인들의 심리학 (feat. 새로운 시작 효과)

by curiousways 2026. 1. 21.

달력의 표시

 

"아, 오늘 점심에 피자 먹었으니까 다이어트는 망했네. 다음 주 월요일부터 새로 시작하자." "지금 공부하기엔 시간이 애매하네. 딱 정각되면 시작해야지."

우리는 무언가를 시작할 때 본능적으로 '딱 떨어지는 타이밍'을 찾습니다. 화요일이나 목요일에 금연을 선언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대부분 월요일, 매달 1일, 아니면 새해 첫날을 D-day로 잡습니다.

왜 우리는 당장 시작하지 못하고 특정 날짜를 기다릴까요? 와튼 스쿨의 헝첸 다이(Hengchen Dai) 교수는 이를 새로운 시작 효과(Fresh Start Effect)라고 명명했습니다. 오늘은 달력이 우리에게 주는 희망 고문과, 그 뒤에 숨겨진 미루기의 심리학을 파헤쳐 봅니다.

1. 시간에도 랜드마크가 필요하다

우리가 길을 찾을 때 "스타벅스에서 오른쪽으로 도세요"라고 말하는 것처럼, 뇌는 시간의 흐름을 인지할 때도 이정표(Landmark)를 필요로 합니다. 이를 시간적 랜드마크(Temporal Landmark)라고 합니다.

생일, 명절, 새해, 월요일, 매월 1일. 이런 날들은 단순한 날짜가 아닙니다. 뇌 속에서 '과거의 나'와 '미래의 나'를 분리해 주는 경계선입니다.

"어제의 나는 게을러서 실패했지만, 다음 주 월요일의 나는 다를 거야." 우리는 시간적 랜드마크를 기준으로 과거의 실패를 청산(Reset)하고, 새로운 자아를 획득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1월 1일 헬스장에는 사람이 미어터지고, 서점에는 토익 책이 동나는 것입니다. 이 효과는 우리에게 강력한 동기부여를 제공합니다. 적어도 그날 하루만큼은 말이죠.

2. 완벽한 타이밍이라는 함정

문제는 이 효과가 양날의 검이라는 점입니다. "새로 시작하기 딱 좋은 날"이 있다는 말은, 반대로 "오늘은 시작하기 나쁜 날"이라는 핑계가 됩니다.

오늘이 수요일이라면, 우리는 "어차피 주말에 놀 텐데, 그냥 다음 주 월요일에 깔끔하게 시작하자"라며 4일이나 되는 시간을 쓰레기통에 버립니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미래의 나에게 떠넘기기'라고 부릅니다. 현재의 내가 겪어야 할 고통(절제, 공부)을 미래의 이상적인 나에게 전가하는 것입니다.

또한, 랜드마크에 의존하면 회복 탄력성이 떨어집니다. 월요일부터 다이어트를 하기로 했는데 화요일에 실수로 치킨을 먹었다면? "에이, 이번 주는 망했어. 다음 주부터 다시 해"라며 포기해 버립니다. 이것을 '어차피 망한 효과(What-the-hell Effect)'라고 하는데, 새로운 시작을 너무 신성시하면 작은 오점 하나에도 와르르 무너지는 부작용을 낳습니다.

3. 인위적인 리셋 버튼을 만들어라

그렇다면 이 효과를 현명하게 쓰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달력에 있는 빨간 날만 기다리지 말고, 나만의 리셋 버튼을 만드는 것입니다.

헝첸 다이 교수의 후속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에게 "봄이 시작되는 날"이라고 말해주는 것만으로도 동기부여가 올라갔습니다. 즉, 의미 부여하기 나름입니다.

수요일 오후 3시라도 상관없습니다. "지금 커피 한 잔 마시고 나서부터가 내 인생의 2막이다"라고 선언하면 그 순간이 시간적 랜드마크가 됩니다. 거창한 기념일을 기다리지 마세요. 당신이 "지금부터!"라고 외치는 그 순간이 바로 가장 완벽한 1월 1일입니다.

요약 및 결론

새로운 시작 효과는 특정 날짜(시간적 랜드마크)를 기점으로 과거를 청산하고 새로운 동기를 얻는 심리 현상입니다. 하지만 이는 '완벽한 타이밍'이 올 때까지 현재의 노력을 미루게 만드는 핑계가 되기도 합니다. 달력상의 날짜를 기다리기보다, 현재 시점에 의미를 부여하여 즉시 시작하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 Curiosity's Insight: 준비만 하다가 늙어 죽을 뻔한 문구 덕후의 고백

# 다이어리를 사야 공부가 시작되는 병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저는 지독한 문구 덕후이자 장비병 환자였습니다. 학창 시절에는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반드시 하이테크 펜 0.3mm 검정, 파랑, 빨강을 세트로 구비해야 했고, 연습장은 모닝글로리에서 나온 줄 간격이 딱 맞는 것이어야 했습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올해는 진짜 영어 공부 한다"라고 결심하면, 서점에 가서 영어 책을 사는 게 아니라 문구점에 가서 3만 원짜리 몰스킨 다이어리와 라미 만년필부터 샀습니다. 그리고 첫 장에 비장하게 "20xx 년 목표: 토익 만점"이라고 캘리그래피 수준으로 정성껏 적었죠.

문제는 그다음이었습니다. 1월 3일쯤 글씨를 쓰다가 오타가 나거나, 줄이 삐뚤어지면 갑자기 모든 의욕이 식었습니다. "아, 이 다이어리는 더러워졌어. 망했네." 믿기지 않겠지만, 저는 그 오타 하나 때문에 다이어리를 찢어버리고 영어를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12월이 오면 새 다이어리를 샀습니다. 그렇게 집에 쌓인 다이어리 앞장만 모아도 책 한 권은 나올 겁니다.

# 완벽주의는 게으름의 가장 화려한 가면이다

저는 제가 꼼꼼하고 완벽주의적인 성격이라서 그런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심리학을 공부하며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그건 완벽주의가 아니라, 그냥 겁쟁이의 도피였다는 것을요.

"준비가 완벽하게 되어야 시작한다"는 말은 "지금은 시작하기 싫다"는 말을 그럴듯하게 포장한 것입니다. 1월 1일을 기다리는 심리도 똑같습니다. 지금 당장 겪어야 할 고통(공부하는 지루함, 운동하는 힘듦)을 마주하기 싫으니까, '신성한 시작일'이라는 핑계를 대며 도망가는 겁니다.

진짜 무서운 건, 이런 준비 과정이 주는 '가짜 성취감'입니다. 다이어리를 사고 계획표를 짜는 동안 뇌는 도파민을 뿜어냅니다. 마치 이미 성공한 것 같은 기분이 들죠. 정작 실행은 하나도 안 했는데 말입니다. 저는 그렇게 준비만 하다가 10년을 허송세월했습니다.

# 가장 좋은 시작은 '더럽게' 시작하는 것이다

지금의 블로그를 키우면서 제가 세운 유일한 원칙이 있습니다. "더럽게 시작하자(Start Dirty)."

각 잡고 노트북 켜고 커피 타와서 조명 켜고 쓰는 게 아니라, 그냥 지하철에서 스마트폰 메모장에 생각나는 대로 휘갈깁니다. 오타? 신경 안 씁니다. 문맥? 엉망이어도 됩니다. 일단 배설하듯이 써놓습니다.

그렇게 엉망진창인 초안이 있으면, 나중에 고치기는 쉽습니다. 하지만 백지상태에서 완벽한 첫 문장을 쓰려고 하면 1시간 동안 커서만 깜빡이는 걸 보게 됩니다.

여러분도 혹시 "다음 주부터 헬스장 끊어야지"라고 생각하고 계신가요? 아니요, 틀렸습니다. 헬스장 알아보고 운동복 사는 건 나중 일입니다. 지금 당장 거실 바닥에 엎드려서 푸시업 10개부터 하세요. 그게 진짜 시작입니다.

# 똥을 싸야 거름이 된다

제 경험상, 모든 위대한 성과는 '완벽한 계획'이 아니라 '지저분한 실행'에서 나왔습니다. 유튜브를 하고 싶으세요? 카메라 사지 마세요. 그냥 지금 입고 있는 잠옷 바람으로 폰카 켜고 1분만 떠들어 보세요. 글을 쓰고 싶으세요? 브런치 작가 신청 고민하지 말고, 그냥 인스타에 일기부터 쓰세요.

망칠까 봐 두려우신가요? 망쳐야 합니다. 첫 시작은 무조건 똥망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게 거름이 돼서 다음번엔 싹이 틉니다. 1월 1일까지 기다리지 마세요. 가장 어정쩡하고, 준비 안 되고, 기분도 별로인 오늘, 바로 지금 저질러 버리세요. 당신의 완벽하지 않은 그 시작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