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대리, 올해 고생 많았어. 알지? 근데 우리 팀 TO가 부족해서 이번엔 B등급이야. 내년엔 잘 챙겨줄게."
연말 인사평가 시즌, 팀장님과의 면담이 끝나고 회의실을 나설 때 기분이 어떤가요? "네,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했지만, 속에서는 천불이 납니다. 차라리 "네가 이 프로젝트에서 이런 실수를 해서 점수가 깎였어"라고 지적이라도 해주면 억울하지는 않을 텐데, "TO가 없다", "다들 고생했다"는 모호한 말로 퉁치고 넘어가면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
우리가 화가 나는 진짜 이유는 'B등급'이라는 결과 때문일까요? 조직심리학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낮은 점수 때문에 화나는 것이 아니라, 그 점수가 나온 과정을 납득할 수 없어서 화가 나는 것입니다. 오늘은 결과보다 더 중요한 절차적 공정성(Procedural Justice)에 대해 이야기해 봅니다.
1. 결과가 나빠도, 과정이 공정하면 승복한다
이전 글에서 다루었던 아담스의 공정성 이론이 "내가 받은 보상의 양(결과)"에 대한 것이었다면, 티보와 워커(Thibaut & Walker) 등이 제시한 절차적 공정성은 "그 결과를 결정하는 과정과 규칙이 공정한가"에 대한 것입니다.
재판을 예로 들어봅시다. 재판에서 졌더라도(나쁜 결과), 판사가 내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주고 법적 절차에 따라 공정하게 판결했다면(좋은 과정), 우리는 억울하지만 결과를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판사가 상대방 편을 들거나 내 변론 기회를 막아버렸다면(나쁜 과정), 우리는 결과에 절대 승복할 수 없습니다.
조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공정 프로세스 효과(Fair Process Effect)에 따르면, 비록 내가 원하던 승진이나 인센티브를 받지 못했더라도, 그 평가 절차가 투명하고 공정했다면 구성원은 조직에 대한 신뢰를 철회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결과가 좋아도 절차가 불투명하면 "이번엔 운이 좋았을 뿐, 이 회사는 믿을 수 없다"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참고] 아담스의 공정성 이론(결과적 공정성) 다시 보기
2. 무엇이 평가를 '공정하다'고 느끼게 만드는가?
그렇다면 구성원들은 언제 평가가 공정하다고 느낄까요? 레벤달(Leventhal)은 절차적 공정성을 높이는 6가지 규칙을 제시했습니다. 그중 현대 조직에서 가장 중요한 3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 일관성(Consistency): 누구에게나, 그리고 언제나 똑같은 기준이 적용되어야 합니다. "김 대리는 예뻐하니까 봐주고, 이 대리는 깐깐하게 평가하고" 식이라면 공정성은 무너집니다.
- 정확성(Accuracy): 정확한 정보와 데이터를 근거로 해야 합니다. "내 느낌상 자네가 좀 부족했어"가 아니라, "데이터를 보니 목표 대비 90% 달성했네"라고 팩트로 이야기해야 합니다.
- 발언권(Voice): 이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평가 결과가 확정되기 전에, 구성원에게 자신의 성과를 설명하고 소명할 기회(목소리)를 줘야 합니다. 내 입장을 충분히 이야기했다는 느낌만으로도 불공정 인식은 크게 낮아집니다.
3. '퉁치는' 리더가 공정성을 망친다
많은 리더들이 평가 면담을 두려워합니다. 나쁜 소식을 전하기 싫어서, 혹은 논리적으로 설명할 근거가 부족해서 가장 나쁜 선택을 합니다. 바로 설명 회피입니다.
"위에서 정한 거라 어쩔 수 없어." "이번엔 어쩔 수 없이 돌아가면서 받는 거야."
이런 말은 리더로서의 책임을 회피하는 것을 넘어, 조직의 절차적 공정성을 훼손하는 치명적인 실수입니다. 구성원 입장에서는 '회사의 시스템'이나 '운'에 의해 내 연봉이 결정된다고 느끼게 되기 때문입니다. 납득할 수 없는 B등급은 직원의 동기를 꺾는 칼이 되지만, 납득할 수 있는 C등급은 성장을 위한 쓴 약이 될 수 있습니다. 그 차이는 오로지 리더의 투명한 설명(Explanation)에 달려 있습니다.
요약 및 결론
- 우리가 평가에 분노하는 이유는 낮은 등급(결과) 때문이 아니라, 납득할 수 없는 과정(절차) 때문입니다.
- 절차적 공정성이 확보되면, 구성원은 나쁜 결과에도 승복하고 조직을 신뢰합니다(공정 프로세스 효과).
- 공정한 평가를 위해서는 일관된 기준, 정확한 데이터, 그리고 구성원의 발언권(Voice) 보장이 필수적입니다.
📌 Curiosity's Insight: 평가는 '판결'이 아니라 '피드백'이어야 한다
많은 조직이 평가 시즌만 되면 법정의 판사처럼 행동합니다. "너는 유죄(C등급), 너는 무죄(A등급)"라고 땅땅 때리고 끝냅니다. 이것은 평가(Evaluation)가 아니라 심판(Judgment)입니다.
절차적 공정성의 끝판왕은 평가를 미래를 위한 피드백으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B등급인 이유는 이것 때문이야. 하지만 내년에 A등급을 받으려면 우리 함께 이 부분을 보완해 보자."
평가 결과가 '성적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음 성장을 위한 내비게이션이 될 때, 구성원은 비로소 그 결과를 억울함 없이 받아들입니다. 리더 여러분, 점수만 던져주고 도망가지 마십시오. 진짜 평가는 등급을 통보한 직후,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할까?"를 논의하는 그 순간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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