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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행동 이야기

"돈 안 받을 땐 즐거웠는데..." 열정맨 김 대리가 5만 원 때문에 동아리 회장에서 물러난 이유 (feat. 구축 효과)

by 호기심의 항구 2026. 3. 23.

"김 대리, 자네가 만든 보드게임 동호회 반응이 아주 뜨겁다며? 직원들 사기 진작에 큰 도움이 된다고 인사팀에서 칭찬이 자자해." "감사합니다, 이사님! 제가 워낙 게임을 좋아해서요. 직원들이 즐거워하니 저도 신나서 하고 있습니다."

입사 3년 차, 저는 사내에 보드게임 동호회를 만들었어요. 회사에서 시킨 것도 아니고 지원금 한 푼 없었지만 상관없었습니다. 저는 자칭 '보드게임 전도사'였으니까요. 매주 목요일이면 제 집 장롱에 있던 10kg짜리 게임 가방을 낑낑대며 출근했습니다. 주말에는 새로 나온 복잡한 전략 게임 룰을 익히느라 밤을 새웠고, 초보 회원들을 위해 직접 요약표를 코팅까지 해서 나눠줬죠. 회원들이 게임 룰을 이해하고 "와! 이거 진짜 재밌다!"라고 외칠 때 느끼는 희열. 그게 제 유일한 보상이었습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저는 세상에서 가장 열정적인 무보수 봉사자였어요.

그런데 회사가 저에게 포상금이라며 활동비를 지급하기 시작한 순간, 모든 것이 꼬이기 시작했습니다.

보드게임을 즐기며 하트가 든 말풍선을 띄운 열정적인 모습과, 돈을 받게 되자 돈주머니가 든 말풍선을 띄운 채 시급을 계산하며 괴로워하는 모습을 대조하여 구축 효과를 묘사

1. 보너스가 독이 든 성배가 되다

1) "수고비로 월 5만 원 책정했습니다"

어느 날 인사팀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동호회 운영 노고를 치하한다며, 운영진 활동비 명목으로 월 5만 원을 지급하겠다는 것이었어요. "와, 좋아하는 일 하면서 돈도 받네? 이건 완전 꿈의 직장 아니야?" 처음에는 공짜 돈이 생긴 것 같아 날아갈 듯 기뻤습니다. 첫 달 활동비를 받자마자 저는 회원들에게 피자를 쏘며 어깨를 으쓱했습니다. "자, 마음껏 드세요! 이제 우리 공식 지원받는 동호회입니다!"

2) 비극의 시작: 마음속 계산기가 켜지다

문제는 두 번째 달부터였습니다. 그날따라 비가 추적추적 내렸어요. 우산도 써야 하고 양손에는 무거운 게임 박스 3개를 들고 지하철을 탔는데, 문득 짜증이 확 솟구쳤습니다. 땀은 비 오듯 쏟아지고, 박스 모서리는 젖어가고 있었죠. '아... 진짜 무겁네. 잠깐, 내가 지금 고작 5만 원 받고 이 짓을 하고 있는 건가?'

예전에는 '내 즐거움'을 위해 자발적으로 했던 일이, 돈을 받는 순간 '고용된 노동'처럼 느껴지기 시작했어요. 제 머릿속에서는 저도 모르게 시급 계산기가 돌아갔습니다.

'모임 준비하고 룰 숙지하는 데 3시간, 게임 진행하고 설명하는 데 3시간, 뒤풀이 정리하고 청소하는 데 1시간... 총 7시간. 한 달에 4번이면 28시간.' '5만 원 나누기 28시간 하면... 시급 1,780원?'

충격적이었어요. 편의점 알바도 최저시급 만 원을 받는 시대에, 저는 시급 1,700원짜리 막노동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어요. 갑자기 제가 봉사자가 아니라, 회사의 '호구'가 된 것 같은 억울함이 파도처럼 밀려왔습니다. '내가 이 푼돈 받으려고 주말 내내 룰 공부하고, 내 돈 써가며 코팅지 샀나?'

3) "저기요, 저는 알바생이 아닙니다"

태도도 변했습니다. 예전에는 회원이 "회장님, 저번에 그 게임 또 하고 싶어요. 무거우시겠지만 가져와 주시면 안 돼요?"라고 부탁하면, "아유, 당연하죠! 제가 두 개 챙겨 갈게요!"라며 싱글벙글했습니다. 하지만 시급 1,700원이라는 계산이 끝난 뒤에는 같은 부탁이 '갑질'로 들렸어요.

'이 사람이 진짜... 내가 짐꾼인 줄 아나? 5만 원 받고 이 고생을 어떻게 더 해? 꼬우면 본인이 사서 들고 오든가.'

게임 설명도 대충 하게 되었습니다. 목이 터져라 설명하던 열정은 사라지고, "설명서 여기 있으니까 읽어보세요. 저도 피곤해서요."라며 퉁명스럽게 대꾸했죠. 심지어 간식도 끊었어요. '활동비 5만 원에서 간식비까지 쓰면 내 인건비는 마이너스다'라는 계산 때문이었습니다.

결국 분위기는 급격히 냉랭해지고 말았습니다. 제가 "업무 과다로 더 이상 운영 못 하겠다"며 회장직을 던졌을 때, 아무도 저를 말리지 않았습니다. 월 5만 원이라는 외적 보상이 제 마음속에 가득 찼던 내적 동기(순수한 즐거움)를 완벽하게 쫓아내 버린 것이죠.

2. 현명한 노인은 아이들을 어떻게 쫓아냈나

1) 소음 공해 해결법

구축 효과를 가장 잘 설명하는 유명한 우화가 있어요. 한 노인이 집 앞마당에서 시끄럽게 축구하는 아이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습니다. 혼을 내도 소용이 없자 노인은 꾀를 냈습니다. 그는 아이들에게 가서 말했어요. "너희들이 노는 모습이 보기 좋구나. 매일 와서 놀면 하루에 1,000원씩 주마." 아이들은 신나서 더 시끄럽게 놀았습니다.

며칠 뒤 노인은 "돈이 다 떨어져서 이제 500원밖에 못 주겠다"라고 했어요. 아이들은 투덜거렸지만 돈을 받았습니다. 다시 며칠 뒤, 노인은 "이제는 돈을 줄 수가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아이들은 화를 냈어요. "뭐라고요? 우리가 돈도 안 받고 공짜로 놀아줄 것 같아요? 다시는 안 와요!" 그 후로 마당은 조용해졌습니다. 아이들의 놀이(내적 동기)가 돈(외적 동기)으로 바뀌었고, 돈이 사라지자 행동도 멈춘 것이에요.

2) 성과급이 만능은 아니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직원들이 사명감을 가지고 자발적으로 하던 프로젝트에, 경영진이 갑자기 과도한 성과급 경쟁을 붙이면 부작용이 생기기 마련이에요. "이거 성공하면 인센티브 100%!" 처음에는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지만, 나중에는 인센티브가 조금이라도 줄어들거나 지급이 늦어지면 아무도 그 일을 거들떠보지 않게 되죠. "돈 안 주면 안 해"라는 마인드가 박혀버리기 때문입니다.

3. 요약 및 결론

구축 효과(Crowding-out Effect)는 금전적 보상 같은 외적 동기가 오히려 사람의 내면에 있는 순수한 내적 동기를 밀어내어, 전체적인 의욕을 떨어뜨리는 현상이에요.

우리는 흔히 보상이 클수록 동기부여가 잘 될 거라고 착각합니다. 하지만 창의적이거나 자발적인 업무에서는 섣불리 돈을 들이미는 것이 독이 될 수 있습니다.

혹시 지금 취미를 부업으로 삼으려 하시나요? "좋아하는 일도 하고 돈도 벌면 좋잖아?"라고 생각하시나요? 조심하십시오. 그 순간 당신의 소중한 취미가 시급 1,700원짜리 노동으로 전락할 수도 있으니까요. 저의 보드게임 동호회처럼 말이죠. 때로는 돈보다 '그냥 좋아서 하는 마음'이 훨씬 더 강력한 연료가 돼요.